2015년 5월 29일
청산도.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서울에서 버스로 다섯 시간 동안 달려 도착한 완도에서 잠깐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완도 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다시 한 시간 정도를 더 가면 도착하는 섬입니다.
예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섬이라 굉장히 기대가 됩니다.
자~ 지금부터 청산도로 떠나 보겠습니다.
청산도로 데려다 줄 배입니다.
날씨가 그리 좋지는 않네요.
비릿한 바다내음을 만끽하며 조금은 흐린 날씨의 바다 풍경도 멋지구나..
...라는 생각을 하는데 어느새 배가 청산도의 도청항에 도착합니다.

작지 않은 섬이라 힘을내 걷기 위해서는 배를 채워야죠.
큼지막한 전복 두 마리가 들어있는 '김국'입니다.
42.195km로 이루어져 있는 청산도 '슬로길'의 처음은 영화 '서편제' 촬영지입니다.
'아리 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에헤에~!'
'봄의 왈츠'라는 드라마의 촬영지도 붙어 있는데요,
그런 드라마가 있었나 싶지만 어쨌든 이런저런 많은 영상에 등장한 만큼 너무 아름다운 곳입니다.
지금은 유채꽃이 거의 다 지고 그 자리를 빨간 양귀비꽃이 대신하고 있네요.
노란 유채꽃이 만발했을 때도 다시 와 봐야겠습니다.
처음 배에서 내린 그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다 어디로 간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사람이 거의 안 보이는 '슬로길'은 이 파란 화살표와 슬로길 푯말만 따라서 걸으면 됩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걸으면 됩니다.
'시간 없이 마냥 걷기.'라는 문구가 아주 적격인 섬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걸으면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에 저절로 감탄사를 뱉게 되고,
저절로 좋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고,
저절로 기분 좋게 만들어 줍니다.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
아기자기 귀엽게 생긴 이름 모를 야생화와 들국화의 시선강탈에 지루함이 없네요.


배고프면 지천에 깔린 산딸기도 따먹고 이름 모를 열매의 맛도 봅니다.
적어도 굶어 죽을 일은 없는 곳입니다.
전날 완도에서 마신 술이 덜 깬 건지 이제는 늙고 지친 건지,
범바위로 올라가는 길이 너무 힘들었는데
마음씨 좋은 아저씨께서 주신 오이가 생명을 연장시켜 주네요.

호랑이가 '어흥~'하고 낸 소리가 바위에 부딪혀 다시 메아리쳐 나온 소리에 놀라
이곳에는 나보다 더 큰 호랑이가 살고 있구나...
하며 도망갔다고 해서 '범바위'라고 이름 붙여졌다는데요.
글쎄요... 청산도에 호랑이가... 음.. 그냥 믿읍시다. ㅎㅎ
멀리 떨어진 외국에 있는 친구와도 실시간으로 얼굴까지 보며 연락할 수 있는 요즘
1년 뒤에 편지가 배달되는 우체통이라...
참 낭만적입니다.
진짜로 1년 뒤에 배달이 될까요?
산골짜기를 흘러내려온 개울물이 저기 바다로 흘러들어 가네요.
분명 별 거 아닌데도 경이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바다로 간 청산도의 개울물은 멀리 일본에도 미국에도 가고 하겠죠?
평지가 거의 없는 청산도는
이렇게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구들장논', '다랭이논'으로
지금 한창 모내기 중입니다.
곳곳의 마늘밭에서 나는 마늘 냄새도 상콤하구요.
한 20km를 걸은 것 같은데 나머지 반은 볼 수 없겠네요.
배 시간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탑니다.
청산도를 순환하는 마지막 버스 시간이 임박해서 정류장에서 뛰는 사람들이 보이는데요.
"청산도에서는 뛰면 반칙이에요. 버스를 놓치는 한이 있어도 걸어야지 왜 뛰어~"
하는 버스 기사님의 말에 버스 안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됩니다.
아쉬운 마음을 꼭꼭 배낭에 잘 챙겨 넣고 청산도를 뒤로해 완도로 나옵니다.
완도로 나와 저녁으로 먹은 전복물회.
완도는 우리나라 전복 생산량의 80%를 차지하고 있다는데요.
글쎄요.. 저는 꼬들꼬들한 회보다는 익힌 전복이 좀 더 좋네요.
보니까 청산도는 당일치기가 아닌 2박 3일,
적어도 1박 2일 일정으로 와야 그나마 어느 정도는 만끽할 수 있는 섬인 것 같습니다.
일몰의 벌건 하늘을 보며 풀벌레 소리와 파도 소리를 고추장에 푹 찍어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사발 마시며...
그렇게 조용조용, 느릿느릿 보내야 하는 섬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 못 본 반을 다음에 다시 와서 봐야 하는 숙제가 생겼네요.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 지정된 청산도는
지금까지 가 본 슬로시티들 중에서도 가장 슬로시티다운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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